저금리시대의 종말?

입력 2015-12-03 07:10  

나홀로 강해진 미국, 이달 금리인상 확실시
'싼 빚'에 기대온 신흥국엔 '외환위기 공포'가…

15~16일 FOMC에 쏠린 눈
유럽 디플레·중국 경착륙 우려…살아나는 듯했던 일본 경제도 주춤
1990년대 금리 인상기 때처럼 강달러 '팍스 아메리카나'될 듯



[ 김유미 기자 ]
운명의 12월이 왔다. 세계가 긴장과 우려로 기다려온 바로 그 연말이다. 예상대로라면 오는 15~16일 열리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 인상이 결정된다. 약 10년 만이다. 2008년 금융위기의 진원지가 막대한 돈풀기 끝에 가장 먼저 금리 정상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이는 저금리 시대의 종말을 뜻하는 것일까. 속도와 시기의 문제일 뿐 돈의 역사가 대전환을 맞을 것이라고 일부에선 말한다. 이번 미국 금리 인상만으로는 저금리 체제의 졸업을 외칠 수 없다는 반론도 있다. 어느 쪽이든 불확실성은 커졌다. 대외 충격에 자유롭지 못한 한국 경제는 어떤 시나리오도 대충 넘길 수 없다. 빚에 기대온 가계와 기업, 자산시장이 저금리 후유증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도 점검해야 한다.

9년6개월 만의 인상

시장과 전문가들은 미국 중앙은행(Fed)의 금리 인상을 기정사실로 보고 있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시장 전문가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92%가 12월 금리 인상을 예측했다. 지난달 응답률 64%를 훨씬 뛰어넘는다. 주요 변수가 있다면 4일(현지시간) 발표될 고용지표 정도다. 국제금융센터는 “이변이 없다면 미국의 정책금리가 이달 0.25%포인트가량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고 분석했다. 과거 미국 정책금리가 연 5%에 달할 때도 있었다. Fed는 2006년 6월 금리를 연 5.0%에서 5.25%로 올린 뒤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불거질 조짐을 보이자 2007년 9월을 기점으로 줄곧 내렸다. 그로부터 1년여가 지난 2008년 12월 정책금리는 연 0~0.25%에 돌입했고, 이 같은 ‘제로금리’가 지금까지 유지됐다. Fed는 더 이상 금리로 경기에 대응할 수 없자 수차례에 걸쳐 막대한 돈을 직접 풀기도 했다(양적 완화). 그런 Fed도 ‘돌아갈 길’에 대해서는 늘 고민해왔다. 2013년 5월 벤 버냉키 당시 Fed 의장은 양적 완화 규모를 축소하겠다고 해 시장에 충격을 줬다. 소위 ‘버냉키 쇼크’다. Fed는 우려 속에서도 양적 완화를 종료했고, 이후 미국 고용시장이 회복세를 타자 금리 인상론에 불을 붙였다. 이번에 금리를 올리면 9년6개월 만의 인상이다. 0.25%포인트의 소폭 인상이 예상되지만 완전한 제로금리는 탈피한다. 적어도 미국에서는 기존의 초저금리 체제가 서서히 막을 내릴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Fed의 ‘마이웨이’

대개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은 ‘더 이상 저금리로 경기에 대응하지 않아도 된다’는 자신감의 신호로 읽힌다. 유독 길었던 글로벌 금융위기의 터널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姸塚?수도 있다. 하지만 세계 경제가 동시에 불황에서 탈출하고 있다고 보긴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미국 경제 성장률이 2011년 1.6%에서 올해 3.1%로 오를 것으로 봤다. 이는 ‘나홀로’에 가깝다. IMF가 예측한 세계 경제 성장률은 같은 기간 4.2%에서 3.5%로 하락세다.

유럽은 바닥을 벗어났지만 여전히 디플레이션 우려가 잠재해 있고, 중국도 경착륙 가능성이 상존한다. 살아나는 듯했던 일본 경제도 주춤하고 있다.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교역 규모가 감소하면서 수출로 먹고살았던 신흥국의 타격이 크다.

미국 금리 인상에 우려가 큰 이유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시장에선 Fed가 ‘세계의 중앙은행’으로서 다른 나라의 상황을 중시하길 바란다”며 “그럼에도 Fed가 버냉키 쇼크 때처럼 ‘마이 웨이(my way)’ 행보를 이어간다면 다른 국가에 상당한 위험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 ‘0%대 성장절벽’ 경고등…당분간 低금리 고수할 듯”


버냉키 쇼크 때보다 취약

특히 전문가들이 걱정하는 것은 신흥국이다. 세계은행은 지난 9월 미국 금리 인상 영향을 분석한 보고서에서 “신흥국은 2013년 버냉키 쇼크 때보다 더 취약해졌다”고 지적했다. 성장률이 둔화돼 재정 여력이 약해지고 있는 한편으로 대외부채는 늘어나 과거보다 위기 대응력이 약해졌다는 설명이다. IMF에 따르면 선진국의 경제 성장률은 2012년 1.2%에서 올해 2.4%로 높아지는 반면 신흥국은 5.2%에서 4.3%로 낮아질 전망이다.

이 상황에서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신흥국 시장에 투자했던 글로벌 자금이 미국으로 돌아가면서 신흥국이 자금 이탈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 일각에선 제2의 외환위기를 점치는 시각도 있다. 미국 금리 인상은 ‘강(强)달러 시대’의 서막으로도 여겨진다. 취약한 신흥국에선 통화가치가 상대적으로 급락할 위험이 따른다. 환율 급변은 금리 변동기의 특징이다.

외환위기 불렀던 미국 금리 인상

과거 미국 금리 인상기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조영무 연구위원은 “미국 통화정책이 금리 중심으로 전환한 1990년대 이후 기준금리는 두 차례 인상 사이클을 겪었다”고 설명했다. 1994년 초부터 약 1년간, 2004년 중반부터 약 2년간이다(그래프 참고). 올해를 포함하면 약 10년 주기인 셈이다.

1990년대 중반 경기 호황으로 물가 상승 압력이 높아지자 미국은 기준금리를 연 3%(1994년 2월)에서 6%(1995년 2월)로 인상했다. 이 기간 멕시코와 아르헨티나가 자금 유출을 겪었고 1997년엔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신흥국에서 외환위기가 발생했다. 경상수지는 적자고 외환보유액은 충분치 못한 취약국의 결말이었다.

2000년대 미국 금리 인상기는 달랐다. 미국 금리가 연 1%(2004년 5월)에서 5.25%(2006년 7월)로 오르는 동안 신흥국에는 자금이 유입되고 주가도 뛰었다. 홍준표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등 신흥국이 급부상하던 때라 미국 금리 인상의 세계적인 충격을 상쇄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팍스 아메리카나’의 부활?

세 번째가 될 이번 미국 금리 인상기는 1990년대와 가까울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중국 등 신흥국 경제가 활력을 잃은 상황에서 자금 유출까지 겪으면 외환위기 가능성이 높아진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올해 3분기 신흥국에서 빠져나온 해외 자금 규모는 400억달러에 달했다.

이번 금리 인상 사이클이 선진국과 신흥국의 구도를 바꿔놓을 것이라는 전망이 여기서 나온다. 금융위기 이후 비실거리던 유럽은 아직 디플레 우려가 있지만 대규모 양적 완화에 힘입어 최악의 국면은 벗어나고 있다. 일본도 회복세가 주춤하면서 우려가 나오지만 기조적 하강은 아닐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특히 미국의 부활은 거침이 없다. ‘셰일가스 혁명’에 힘입어 미국 제조업이 원가 경쟁력으로 무장하면서 저성장 탈출을 주도하고 있다. 저금리의 종말은 ‘팍스 아메리카나’ 복귀의 신호탄일 수 있다는 해석까지 나온다.

미국과 유럽의 ‘엄청난 이혼’

물론 저금리의 종말은 미국만의 얘기일지 모른다. 김윤경 국제금융센터 연구분석실 북미팀장은 “유럽중앙은행(ECB)은 이달 예금금리를 0.1~0.2%포인트 인하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미국과 다른 나라 간 ‘통화정책 차별화’가 시작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본과 중국도 추가 금융 완화를 단행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돈을 풀어 자국 통화가치를 낮추는 것이 수출 등 경기에 이롭다는 판단에서다.

이 같은 ‘통화전쟁’이 계속된다면 이들 국가에선 저금리가 더 심해질 수 있다. 역사적 저금리의 끝을 선언하기에는 섣부르다는 얘기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엇갈린 통화정책에 따라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메릴린치는 이에 따른 각국 통화의 엇갈림을 ‘엄청난 이혼(great divorce)’이라고 표현했다.

‘그린스펀 수수께끼’의 교훈

일부에서는 미국도 당분간 저금리를 유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재닛 옐런 Fed 의장은 지난달 23일 “첫 금리 인상 후 금리 상승 속도는 완만할 것”이라고 밝혔다. 급히 금리를 올렸다간 경기가 다시 위축될 수 있다. 미국 내에선 과도한 달러 강세가 자국 수출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대부분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은 내년 중 미국의 정책금리가 2~4차례 더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0.25%포인트씩 오른다면 내년 말에는 연 0.75~1.50%에 이른다.

시장금리가 따로 갈 가능성도 있다. 한은 관계자는 ‘그린스펀 수수께끼’의 재연 가능성을 언급했다. 2004~2006년 미국의 정책금리가 크게 올랐지만 시장금리는 거의 오르지 않았던 기현상을 말한다. 그는 “세계 경제가 계속 나빠 미국 채권 수요가 커지면 채권금리는 하락 압박을 받는다”며 “Fed 의도와 달리 시장에선 저금리가 계속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IB들의 끈질긴 금리 인하론

이제 한국의 선택이 남았다. 이주열 한은 총재가 취임한 지난해 4월 이후 한은은 네 차례 기준금리를 내렸다. 현 기준금리(연 1.5%)는 사상 최저치다. 금융위기 직후였던 2009년 2월~2010년 6월(연 2.0%)보다 낮다. 전문가들은 위기 이전처럼 5% 안팎의 고금리가 재연될 가능성은 당분간 낮게 보고 있다. 저출산과 잠재성장률 하락 등으로 과거와 같은 고성장, 고물가는 힘들 것이라는 분석이다.

상당수 전문가는 미국 금리 인상이 국내 금리를 당장 끌어올리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저성장이 여전한 만큼 완화정책을 폐기하기 이르다는 점에서다. 금리 인상의 명분이 될 물가상승률 또한 원유값 안정에 따라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정순원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미국 금리가 올라도 국내 상황을 우선해 금리를 결정할 것”이라고 금통위 분위기를 전했다.

실제로 미국이 2004년 6월부터 금리를 올렸음에도 한은은 그해 8월과 11월 금리를 내렸다. 금리 인상에 돌입한 것은 한참 뒤인 2005년 10월이었다. 조영무 연구위원은 “미국 통화정책과 달리 갔지만 심각한 자본 유출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시장에서는 추가 금리 인하 기대도 끈질기다. 씨티은행은 산업 구조조정 우려가 계속되고 성장이 둔화함에 따라 내년 2閨藪?두 차례 금리가 인하될 것으로 내다봤다. 바클레이즈는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1분기에 한 차례 금리 인하를 전망했다. 한국은 펀더멘털이 튼튼하므로 미국 금리 인상에 따른 자금 유출을 덜 걱정해도 된다는 설명이다.

“느긋할 때 아니다”

반면 예상보다 빨리 금리 인상이 필요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송두한 NH농협지주 금융센터장은 “미국 금리가 상승하면 국내 금리도 바로 따라갈 가능성이 높다”며 “금리가 오르면서 기업 부채가 현실적인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미국 금리 인상 충격이 예상보다 클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동향분석실장은 “자본 유출 같은 금융시장보다 수출 등 실물경제가 더 걱정”이라며 “과거 미국 금리 인상기와 달리 중국 경제가 문제”라고 설명했다. 미국 경제 회복에 따른 수출 증가분보다는 신흥국 둔화에 따른 수출 감소분이 더 클 것이라는 지적이다. 일부 취약국에서 금융위기까지 발생하면 수출이 더 타격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금융시장에서 주시하는 것은 금리 차다. 신흥국 금리는 미국보다 금리가 대체로 높다. 그런데 이 격차가 줄어들거나 아예 미국 금리가 신흥국보다 높은 상황이 되면 신흥국의 자금 유출 가능성이 높아진다. 신흥국은 이를 방지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높여야 할 수도 있다. 가계부채 급증 등 저금리의 부작용을 언제까지 감당할 수 있느냐도 문제다. 한국 역시 언젠가 찾아올지 모르는 저금리의 끝에 대비해야 한다는 얘기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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